미추홀(彌鄒忽)은 비류가 오늘날 인천광역시에 세웠던 도시국가이자 인천 지역을 일컫는 옛 지명으로, 종종 미추국, 비류국, 비류백제(沸流百濟) 등으로 불린다. 비류 사후 미추홀이 백제에 흡수된 이후에도 지명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부평권을 포괄하는 현재 인천광역시와 다르게 예전 인천 지역은 오늘날 인천광역시 남부와 시흥시 일부를 관할하였다. 인천 지역은 지금 인천광역시 중구, 동구, 미추홀구, 남동구, 연수구, 부평구 십정동과 경기도 시흥시 북부(옛 소래읍), 부천시 옥길동, 계수동, 광명시 옥길동에 해당한다.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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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고구려를 떠난 비류온조 형제가 남하하던 중 비류가 머물러 나라를 세운 곳이 미추홀이다.[1] 훗날 온조가 세운 백제에 흡수 통합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매소홀'(買召忽)로 기록되어 있는데[2] 미추홀과 같은 표기로 "미숫골"로 읽을 수 있다. 인천이라는 명칭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러서야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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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 인천은 각국의 영사관이 설치되는 등 외국과 통상하는 중심지가 되면서 국제 도시화했다.

  • 1895년 23부제(二十三府)로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인천부의 치소(治所)가 되었다. 原仁川都護府(원인천도호부) 관할지는 인천군이 되었다.
  • 이듬해 1896년 다시 13도제로 변경되면서 경기도에 속하여 경기도 인천부가 되었다.
  • 일제강점기에 한반도(韓半島)를 강제로 점령한 시기인 1914년에 일제에 의한 행정 폐합으로 인천부는 인천항 중심의 시가지로 대거 축소되고 기타 외곽은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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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증동국여지승람》 9. 
  2. 邵城縣, 本高句麗 買召忽縣, 景德王改名, 今仁州[一云<慶原買召>, 一作<彌鄒>35卷-志4-地理2-10《三國史記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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