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천도교 |
주요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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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 · 최시형 · 손병희 · 박인호 전봉준 |
경전 |
동경대전 · 용담유사 해월신사 법설 의암성사 법설 |
교리 |
시천주 · 사인여천 · 인내천 · 후천개벽 |
역사 |
동학 · 동학 농민 혁명 |
관련 단체 |
천도교 중앙총부 천도교 연원회 천도교유지재단 천도교청우당 |
문화유산 |
천도교 중앙대교당 · 천도교 임실교당 |
동학(東學)은 1860년(철종 11) 최제우가 창도한 조선 말엽의 사상이다. 이후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계승되지만 1898년 해월 최시형의 순도이후 종통(宗統) 계승을 둘러싸고 분란이 발생하여 여러 분파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배경
[편집]조선 후기에 이르러 각지의 반란, 외국의 간섭, 정치의 문란, 사회적인 불안과 긴장이 계속되었으며 한편 종래의 종교는 이미 부패 또는 쇠퇴하여 민중의 신앙적인 안식처가 되지 못하였다.
성립
[편집]이와 같은 정세를 배경으로 경주 출신인 최제우는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을 품고, 1860년 서학(西學: 천주교)에 대립되는 민족 고유의 신앙을 제창, 동학이라 이름 짓고 종래의 풍류 사상과 유(儒)·불(佛)·선(仙)의 교리를 토대로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므로 모든 사람은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 아니된다.)',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인내천'의 원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지상천국의 이념 즉,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자는 이념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인권과 평등사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신앙의 구체적 방법은 21자의 주문 '至氣令至, 願爲大峰,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를 외우고 칼춤을 추며 '弓弓乙乙'이라는 부적을 태워 마시면 빈곤에서 해방되고 제병장생(濟病長生), 영세무궁(永世無窮)한다는 기본적인 것이었다.
전파
[편집]한편 동학은 조선의 지배논리인 신분·적서제도(嫡庶制度) 등을 부정하는 현실적·민중적인 교리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되던 삼남지방에 재빨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최제우는 포교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864년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처형당하고,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어 비밀리에 교조의 유문(遺文) 《동경대전》,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는 한편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세를 확대시켰다. 그 후 동학 혁명이 일어나 최시형도 처형을 당하고 동학은 천도교(天道敎)와 시천교(侍天敎)로 분열, 3대 교주에는 손병희가 되어 꾸준히 교리 정비와 교세 확장에 힘썼다.
조직
[편집]동학의 교회 조직은 최시형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즉 전국 각지에 세포 조직인 포(包)를 설치하여 접주(接主)로 통솔케 하고, 접주(接主) 중에서 유력한 사람을 도접주(都接主) 또는 대접주(大接主)라 하여 여러 포를 통솔하는 한편 교장(敎長)·교수(敎授)·도집(都執)·집강(執綱)·대정(大���)·중정(中正)의 6가지 직분을 두었다.
영향
[편집]동학의 혁명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 동학 농민 운동
- 최제우
- 동경대전
- 용담유사
- 천도교
- 시천교
- 천진교
- 무극대도(無極大道)
- 원시반본(原始返本)
- 복본사상(復本思想) - 참고로, 일본 천리교에서는 복본을 '대본'(大本)이라고 하며 대본영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됨
- 자기동래(紫氣東來) - 중국 산둥성 타이안에 있는 태산의 정상에 있는 벽하원군(碧霞元君)을 기리는 도교사원인 벽하사(碧霞祠) 근처에 새겨져 있는 글귀이며 베이징시의 이화원에도 있다
- 고려회가(高麗回家)
- 대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