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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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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 홍씨
貞嬪 洪氏
조선 선조의 후궁
신상정보
출생일 1563년 8월 25일(1563-08-25) (양력)
사망일 1638년 4월 4일(1638-04-04)(74세) (양력)
가문 남양 홍씨
부친 홍여겸
모친 창녕 조씨
배우자 선조
자녀 1남 1녀
정정옹주
경창군

정빈 홍씨(貞嬪 洪氏, 1563년 8월 25일(음력 7월 27일) ~ 1638년 4월 4일(음력 3월 1일))는 조선 선조후궁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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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현감을 지내고 이조참판에 추증된 홍여겸의 딸로, 1563년 음력 7월 27일에 태어났다. 본관남양이다.[1]

1580년(선조 13년) 음력 5월 26일 민사준의 딸(정빈 민씨), 정순희의 딸 등과 함께 종2품 숙의에 책봉되어 봉상시동(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당주동 일대[2])에 있는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3][4] 이후 언제 진봉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의 기사에서 이미 그녀를 정빈(貞嬪)으로 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그 이전에 정1품 에 책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그녀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난을 가야 했는데, 음력 5월 8일부터 그녀를 비롯한 선조의 후궁들에게 하루 세 끼가 지급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5] 이후 1596년(선조 29년) 아들 경창군을 낳았다[1]

그러나 홍씨는 인조 연간에 발발한 정묘호란으로 인해 또 피난을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홍씨는 충청도 제천에 있었는데, 인조는 홍씨 등[6]에게 해당 고을에서 음식 등에 각별히 신경쓰도록 명을 내렸다.[7]

한편 홍씨는 1638년 음력 3월 1일 76세로 사망하였으나, 《실록》의 1638년(인조 16년) 음력 11월 18일 기록에 따르면 전쟁(병자호란)으로 인해 그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8]

홍씨는 선조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홍씨의 아들은 이름은 주(珘)이며, 경창군에 책봉되었다.[1] 딸은 정정옹주에 봉해졌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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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 홍여겸(洪汝謙, 생몰년 미상)
  • 어머니 : 창녕 조씨(昌寧 曺氏) - 조명원(曺明遠)의 딸

정빈 홍씨가 등장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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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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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주이씨대동종약원 - 경창군 약사”. 2015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7월 17일에 확인함. 
  2. 당주동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3. 《조선왕조실록》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 8년) 5월 26일(갑오) 1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선조 14권, 13년(1580 경진 / 명 만력 8년) 5월 26일(갑오) 2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선조 26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 20년) 5월 8일(정묘) 8번째기사
  6. 역시 선조의 후궁이던 온빈 한씨양주로 피난을 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인조 15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 7년) 2월 28일(을축) 6번째기사 참고
  7. 《조선왕조실록》인조 15권, 5년(1627 정묘 / 명 천계 7년) 2월 28일(을축) 6번째기사
  8. 《조선왕조실록》인조 37권, 16년(1638 무인 / 명 숭정 11년) 11월 18일(병자) 2번째기사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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